카테고리 없음

바람이 거세던 날 찾은 소록도, 그리고 묵직한 감정(#꼬꼬무 시청)

느린어르니 2025. 4. 4. 16:22
반응형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줄여서 '꼬꼬무'를 어제 시청했습니다.

'낙인 -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섬'이라는 부제로 방송된 이번 편은 전라남도 고흥군에 위치한 소록도의 과거를 다뤘습니다.

고흥이 제 고향이라 더 깊이 몰입해 보게 되었고, 방송이 끝난 뒤에도 한동안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Alt 속성 문제 해결 설명 이미지
AI그림

저는 고흥에서 나고 자랐지만, 사실 소록도에 대해 잘 알지 못했습니다.

고흥 외곽이라 소독로의 존재를 몰랐고 자라면서 어릴 적에는 소록도는 금기처럼 여겨지는 장소였습니다.

주변 어른들도 그곳에 대해 말하길 꺼렸고, 자연스레 저는 소록도에 대해 무지한 채 성장했습니다.

 

마흔이 넘은 지금에서야 겨우 두세 번쯤 가봤을까요.

그중 한 번은 바람이 유독 거세던 날이었습니다.

배가 아니라 다리 건너서 갈수 있다고 해서 처음 가본 기억이 있습니다

그날은 바람이 참 거세게 불었습니다

거센 바람에 몸을 가누기 어려웠고, 그 바람 속에서 소록도를 처음 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날의 풍경은 아름다웠지만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고 고요했습니다.

그리고 이제야 그 조용함 속에 어떤 상처와 아픔이 숨겨져 있었는지를 알게 된 것 같습니다.

방송에서는 소록도에 강제로 수용된 한센병 환자들의 삶이 조명되었습니다.

그곳은 단순한 병원이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외면과 고립 속에 살아야 했던 사람들의 ‘섬’이었습니다.

소록도에서 태어난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부모와 격리됐고, 결혼과 출산의 자유조차 제한받았다고 합니다.

심지어 강제 단종 수술까지도 이루어졌다는 이야기는 너무나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런 일이 불과 몇십 년 전까지도 존재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방송을 보며 가장 마음이 아팠던 순간은, 그곳에서 오랜 세월을 버텨낸 한 분이 “소록도는 우리가 원해서 온 곳이 아니었다”고 말할 때였습니다.

 

그 말 한마디에 모든 것이 담겨 있었습니다. 병이 죄가 아닌데, 왜 그들은 죄인처럼 살아야 했을까요.

 

저는 소록도에 대해 너무 늦게 알게 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제라도 알게 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과거를 기억하고 마주하는 용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잊지 않아야 할 이야기들이 있고, 그 기억이 누군가의 상처를 조금은 덜 아프게 만들 수도 있으니까요.

앞으로 고흥에 갈 일이 생긴다면, 다시 한 번 소록도를 찾아 조용히 걸어보고 싶습니다.

바람이 불던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이제는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그 섬을 바라보고 싶습니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