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이 두 글자만으로도 가슴 한켠이 따뜻해진다.
내가 자란 곳, 그리고 여전히 엄마가 밭농사를 지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곳.
2025년, 고향에도 또 한 해 농사가 시작되었다.
엄마는 늘 그렇듯 고추농사를 짓는다.
해마다 봄이 오면 비닐을 씌운 밭고랑에 고추모종을 심는다.
모종 하나하나를 손바닥으로 감싸듯 심는 엄마의 손길은 조심스럽고도 단단하다.
그 모습은 마치 한 해 농사의 무게를 오롯이 손끝에 담은 듯하다.
고추모종을 다 심고 나면, 엄마는 맨 끝 줄에 '가지'를 심는다.
어릴 때부터 늘 보아온 풍경인데, 나는 늘 궁금했다.
"왜 고추밭 끝에 가지를 심는 거야?"
엄마는 웃으며 말했다.
"그냥... 옛날부터 그렇게 했어. 고추농사가 잘 되라고."
정확한 이유는 몰라도, 그 소박한 믿음이 참 따뜻하게 느껴졌다.
봄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밭 한가운데서,
엄마는 구부린 허리를 펴지도 않고 묵묵히 일을 이어간다.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 아래, 고추모종은 이제 막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고,
가지 모종은 고추 끝머리에 조심스레 심겨져 있다.
내 고향은 그렇게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2025년 농사의 첫 걸음을 뗐다.
비닐 너머로 비치는 촉촉한 흙냄새, 부드러운 바람, 그리고 햇살 아래 반짝이는 고추잎들.
그 모든 것이 살아있음을, 계절이 다시 돌아왔음을 말해주는 듯했다.
도시에 사는 나는 이제 고향에 자주 가지 못한다.
그래도 마음 한켠에는 늘 엄마가 농사짓는 그 밭이 자리 잡고 있다.
엄마가 땀 흘리며 심어놓은 고추와 가지,
여름이 오면 그들은 온몸으로 햇살을 받고, 장맛비를 견디며 자랄 것이다.
가을이 오면 엄마는 빨갛게 익은 고추를 따고,
보랏빛으로 영글어가는 가지를 조심스레 수확할 것이다.
그리고 그때쯤 나는 다시 고향에 내려가,
엄마 손에 이끌려 땀 냄새 밴 고추를 한 아름 안고 웃고 있을지도 모른다.
2025년 봄,
내 고향의 밭에서는 또 한 번 '기다림'이 심어졌다.
수확을 위한 긴 기다림, 땀과 정성을 아끼지 않는 시간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꿋꿋이 견뎌낼 엄마의 한 해.
농사는 기적이 아니다.
흙을 믿고, 하늘을 믿고, 자신을 믿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 기적 같은 현실을 만들어내는 엄마.
나는 오늘도, 내 고향을 생각하며 조용히 마음속으로 기도한다.
"올해 농사도 잘 되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