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트롯4를 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분은 왜 계속 경연 프로그램에 나오는 걸까.”
이전 시즌에서도 봤던 얼굴, 또 다른 오디션에서도 봤던 이름.
예전 같았으면 신선하지 않다고 넘겼을 장면인데, 이상하게도 이번에는 그 질문 뒤에 다른 감정이 따라왔다.
아, 그만큼 간절하니까. 무대에 다시 서고 싶고, 노래로 버티고 싶은 마음이 있으니까 계속 도전하는 거겠지.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이제 가요보다 트롯이 더 귀에 들어오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젊을 때는 트롯이 왜 그렇게 느리고, 왜 그렇게 구슬픈지 이해하지 못했다.
사랑 노래는 밝아야 하고, 리듬은 빨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트롯 가사 하나하나가 또렷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이별, 기다림, 후회, 가족, 지나간 시간. 그 모든 이야기가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설날에 고향에 내려가면 아마 또 그럴 것이다.
저녁을 먹고 나서, TV를 켜고, 엄마 옆에 앉아 새벽까지 트롯 프로그램을 보게 되겠지.
“저 사람 노래 잘한다”, “저 음색은 참 서럽다” 같은 말들을 나누면서. 예전에는 그 시간이 지루했는데, 이제는 그 풍경이 자연스럽다. 아니, 오히려 기다려진다.
문득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매주 빠짐없이 가요무대를 보시던 아버지. 채널을 돌리다 그 프로그램이 나오면 그대로 멈추고, 조용히 끝까지 보시던 모습. 그때의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왜 맨날 비슷한 노래를 보고, 왜 저렇게 집중하는지. 나에게는 최신 가요가 훨씬 재미있었으니까.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그건 단순히 노래를 보는 시간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 노래 안에는 아버지가 살아온 시간, 견뎌온 세월, 말로 하지 못한 감정들이 들어 있었을 것이다.
트롯은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대신 말해주는 음악이니까.
요즘의 내가 그렇다.
트롯을 들으면서 “아, 그렇지”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가사 속 한 줄이 마음을 콕 찌르고, 무대 위 가수의 떨리는 목소리에 괜히 울컥해진다.
예전 같았으면 과하다고 느꼈을 감정 표현이 이제는 오히려 진솔하게 느껴진다.
나이가 들면서 부모님이 걸어왔던 길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좋아하는 음악도, TV 앞에 앉아 있는 시간도, 고향에서 보내는 설날의 풍경도.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이 이제는 너무나 당연해졌다. 그래서 조금은 쓸쓸하고, 조금은 따뜻하다.
아마 몇 년 뒤에는 지금의 나를 떠올리며 또 다른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때도 여전히 트롯을 듣고 있을까. 아니면 또 다른 음악이 나를 위로해주고 있을까.
분명한 건, 음악 취향이 바뀌었다는 사실보다 그 안에 담긴 감정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미스트롯4를 보다가 시작된 이 생각이 결국 나와 부모님, 그리고 시간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왔다.
이게 바로 나이가 든다는 증거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쁘지 않다. 누군가의 노래에 공감할 수 있다는 것, 부모님의 시간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 그건 분명, 나에게도 필요한 변화니까.